개요
1912년 발표된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의 작품.
화성 시리즈로 알려져 있으며, 후속작 2개(바숨 존카터 화성의 신들, )와 함께 "화성 초기 3부작"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화성 3부작은 2012년 쫄닥 망하기는 했지만 영화화되기도 했다.
화성 시리즈의 처음을 기록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전이된 주인공 존 카터의 모험을 그리며, 화성의 다양한 종족과 문화, 그리고 그곳에서의 사랑과 전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예고편
존 카터, 남북전쟁의 베테랑 장교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화성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지구인 신체가 저중력 환경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이를 뛰어오를 수 있었다.
마치 초인적인 힘을 얻은 것 같았다."
화성의 황폐한 대지에서 그는 거대한 녹색 전사들의 종족을 만나고,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시련은 아름다운 붉은 인간 공주 데자 토리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당신은 어떤 종족인가요? 당신같은 전사는 본 적이 없어요."
존은 데자 토리스를 구하기 위해 화성의 야만적인 전사들과 맞서 싸우고, 적대적인 도시들 사이의 전쟁에 휘말린다.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는 모험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깊어만 간다.
"나는 당신을 위해 화성 전체와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성 전체를 위협하는 더 큰 위험이 닥쳐온다.
행성의 생명을 유지하는 대기 공장이 멈추고, 모든 생명체가 질식할 위기에 처한다.
"우리에게는 단 3일의 시간밖에 없습니다."
존 카터는 사랑하는 여인과 새로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도전을 감행한다.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 낯선 세상을 싸워 헤쳐온 존 카터가 그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의 불멸의 고전, "화성의 공주" 모험, 로맨스, 그리고 우주를 넘어선 사랑의 대서사시.
줄거리
애리조나 언덕에서 존 카터는 남북전쟁 후 금광을 찾아 애리조나로 갔다가 아파치 인디언들에게 쫓겨 동굴에 숨는다.
그곳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나 보니 화성에 와 있었다.
화성에 도착한 카터는 중력이 지구보다 약해 높이 뛸 수 있었다.
그는 4개의 팔과 송곳니를 가진 녹색 화성인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다.
카터는 녹색 화성인 타크족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운다.
그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거대한 유인원을 만나 위기에 처한다.
카터는 유인원과 싸워 이기고 타크족의 존경을 얻는다.
그는 솔라와 우정을 쌓고 화성의 아이 양육법에 대해 배운다.
하늘에서 온 포로 타르크족이 붉은 화성인들의 비행선을 격추시키고 데자 토리스 공주를 포로로 잡는다.
카터는 그녀에게 끌리지만 대화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카터는 데자 토리스를 모욕한 전사를 죽이고 타르크족의 11번째 족장이 된다.
그는 공주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미리보기
머리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카터 대위의 기이한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면서, 이 특별한 인물에 대해 몇 마디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카터 대위에 대한 첫 기억은 남북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버지니아에 있는 우리 집에서 몇 달간 머물렀을 때다.
당시 나는 다섯 살배기 아이였지만, 잭 삼촌이라 불렀던 키가 크고 검은 피부에, 매끈한 얼굴을 가진 건장한 사람을 또렷이 기억한다.
잭 삼촌은 늘 웃음을 짓고 다녔다.
아이들과 놀 때도 어른들과 어울릴 때처럼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때로는 한 시간이고 앉아서 할머니께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겪은 신기하고 거친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집안 사람 모두가 잭 삼촌을 좋아했고, 노예들은 삼촌이 밟고 다니는 땅바닥까지 숭배하다시피 했다.
잭 삼촌은 완벽한 신사였다.
키는 6피트에서 2인치가 더 컸고, 어깨는 넓고 허리는 날씬했으며, 숙련된 전사의 기품이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검은 머리는 짧게 깎았다.
강철 같은 회색 눈동자에는 강인하고 충직한 성품이 담겨 있었고, 열정과 진취성이 가득했다.
예의 바른 태도는 완벽했고, 최고의 남부 신사다운 품격을 지녔다.
특히 사냥할 때 말 타는 솜씨는 훌륭한 기수들이 많은 그 지역에서도 감탄할 만했다.
아버지가 무모하게 말을 타지 말라고 자주 주의를 주었지만, 잭 삼촌은 그저 웃으며 자신을 죽일 낙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말에서 일어날 거라고 말했다.
전쟁이 터지자 잭 삼촌은 떠났고, 15년이나 16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고 겉모습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예전처럼 친근하고 유쾌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수 시간 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애틋한 그리움과 절망적인 슬픔에 잠기곤 했다.
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앉아있었는데, 수년 후 원고를 읽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전쟁 이후 애리조나에서 광산 탐사와 채굴을 했다고 했다.
넘치는 돈을 보면 꽤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고, 사실상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1년 정도 우리와 지내다가 뉴욕으로 갔다.
거기서 허드슨 강가에 작은 집을 샀는데, 버지니아 전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던 잡화점들의 물건을 사러 뉴욕에 갈 때마다 일 년에 한 번씩 들렀다.
카터 대위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1885년 겨울, 마지막 방문 중 하나에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원고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잭 삼촌은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재산을 맡아달라고 했다.
서재에 있는 금고 한 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면서, 그곳에 유언장과 개인적인 지시사항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지시사항을 반드시 지켜달라는 약속을 받았다.
밤에 잠자리에 든 후 창문 너머로 보면, 잭 삼촌이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서서 마치 간청하듯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달빛을 받고 서 있었다.
당시에는 기도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잭 삼촌이 독실한 종교인이었다고는 알지 못했다.
마지막 방문 후 몇 달이 지난 1886년 3월 1일쯤, 당장 와달라는 전보를 받았다.
나는 젊은 카터 가문 사람들 중에서 잭 삼촌이 가장 아끼는 조카였기에 서둘러 달려갔다.
1886년 3월 4일 아침, 잭 삼촌의 땅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역에 도착했다.
마부에게 카터 대위의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대위의 지인이라면 나쁜 소식이 있다고 했다.
그날 새벽, 옆 집 경비원이 잭 삼촌을 죽은 채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소식이 놀랍지는 않았다.
시신과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서둘러 그의 집으로 향했다.
시신을 발견한 경비원과 지역 경찰서장, 그리고 마을 사람 몇 명이 잭 삼촌의 작은 서재에 모여 있었다.
경비원은 시신을 발견한 상황을 설명했는데, 발견 당시 시신이 아직 따뜻했다고 했다.
시신은 절벽 끝을 향해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은 채 눈 위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 자리를 보여줬을 때, 예전 밤에 잭 삼촌이 하늘을 향해 팔을 들어 애원하듯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라는 걸 깨달았다.
시신에는 폭력의 흔적이 없었고, 지역 의사의 도움으로 검시 배심원단은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이라고 신속히 결론 내렸다.
서재에 혼자 남아 금고를 열고 지시사항이 있다던 서랍 속 내용물을 꺼냈다.
지시사항의 일부는 정말 특이했지만,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충실히 따랐다.
방부 처리하지 말고 시신을 버지니아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 둔 무덤 안의 열린 관에 안치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무덤은 환기가 잘 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필요하다면 비밀리에라도 이 지시사항을 반드시 직접 이행하라고 강조했다.
재산은 25년 동안 내가 수입 전체를 받고, 그 후에 원금을 상속받는 방식으로 남겼다.
추가 지시사항은 이 원고에 관한 것이었다.
발견한 그대로 밀봉된 상태로 11년 동안 읽지 말고 보관하라고 했다.
그리고 사망 후 21년이 지날 때까지 내용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무덤의 이상한 점은, 거대한 문에 금도금된 용수철 자물쇠가 하나 달려 있는데 안에서만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심을 담아,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 드림.
1장. 애리조나 언덕에서
나는 매우 늙은 사람이다.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아마도 백 살이 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지 않았고,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어서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기억나는 한 나는 늘 서른 살 정도의 성인이었다.
지금도 사십 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젠가는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진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두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난 내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도 죽어보지 않은 사람들처럼 나도 똑같은 공포를 느낀다.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이런 확신 때문에 내 인생의 흥미로운 시기들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했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순 없다.
다만 애리조나의 동굴에서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채 십 년 동안 벌어진 기이한 사건들을 용병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내가 영원히 떠난 뒤에야 이 원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중과 종교계, 언론에 거짓말쟁이로 매도당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진실을 말할 뿐이며, 언젠가 과학이 이를 입증할 것이다.
화성에서 얻은 통찰과 이 기록에 남길 지식이 우리의 자매 행성의 신비를 더 빨리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에겐 아직 신비겠지만, 나에겐 더 이상 신비가 아니다.
내 이름은 존 카터다.
버지니아의 잭 카터 대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남북 전쟁이 끝났을 때, 나에겐 수십만 달러의 남부연합 돈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군대의 기병대 대위 계급장이 있었다.
남부의 희망과 함께 사라진 국가의 군인이었다.
주인도, 돈도 없고,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전투마저 끝나버렸다.
그래서 남서부로 가서 금을 찾아 몰락한 운을 다시 일으켜보기로 결심했다.
리치먼드 출신의 제임스 K. 파월 대위라는 다른 남부연합 장교와 거의 일 년 동안 광산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다.
1865년 겨울 끝 무렵, 많은 고난과 궁핍을 겪은 끝에 상상 이상으로 놀라운 금맥을 발견했다.
광산 기술자 출신인 파월은 삼 개월 만에 백만 달러가 넘는 광석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장비가 너무 조잡했기 때문에 한 명이 문명세계로 돌아가 필요한 기계를 사와야 했다.
또 광산을 제대로 운영할 만한 인력도 데려와야 했다.
파월은 이 지역 지리도 잘 알고 광산 기계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래서 파월이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혹시라도 떠돌이 광부들이 우리 광산을 차지할 수 있으니 내가 이곳을 지키기로 했다.
1866년 3월 3일, 파월과 나는 당나귀 두 마리에 필요한 물건들을 실었다.
파월은 작별 인사를 하고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산비탈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그의 여정 첫 구간이었다.
파월이 떠난 그 아침도 다른 애리조나의 아침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파월과 작은 짐승들이 산비탈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 내내 그들이 언덕 마루에 올라서거나 평평한 고원지대로 나올 때마다 간간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월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계곡 반대편 산맥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30분쯤 지나서 무심코 계곡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파월과 두 짐승을 마지막으로 봤던 곳에서 세 개의 작은 점이 보였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파월이 무사하다고, 그 점들은 영양이나 야생마일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할수록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 지역에 들어온 뒤로 적대적인 인디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방심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길에 잔인한 약탈자들이 많이 숨어 있어서 백인들을 잡아 고문하고 죽인다는 이야기까지 비웃었다.
파월은 무장도 잘 했고 인디언과 싸운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나도 북쪽에서 수년간 수족 인디언들과 싸우며 살았기에, 교활한 아파치 무리를 상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다.
결국 더는 불안을 참을 수 없어서, 콜트 리볼버 두 자루와 카빈총으로 무장했다.
탄약대 두 개를 매고 말에 안장을 얹어 아침에 파월이 간 길을 따라 내려갔다.
비교적 평평한 땅에 도착하자마자 말을 속보로 몰았다.
길이 허락하는 한 계속 달렸다.
해질 무렵, 다른 발자국들이 파월의 발자국과 만나는 지점을 발견했다.
편자를 신기지 않은 조랑말 세 마리의 발자국이었고, 그것들은 질주한 흔적이었다.
어둠이 내리자 달이 뜨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이 추격이 현명한지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어쩌면 신경질적인 노파처럼 없는 위험을 상상한 것일 수도 있었다.
파월을 따라잡으면 오히려 내 걱정을 비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예민한 성격이 아니다.
의무감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것이 내 평생의 신조였다.
아마도 그래서 세 공화국에서 명예를 얻었고, 늙고 강력한 황제와 여러 소국의 왕들에게서 훈장과 우정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내 칼은 여러 번 피로 물들었다.
밤 9시쯤 달빛이 충분히 밝아져서 다시 길을 갈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쉽게 발자국을 따라갔고, 어떤 곳에서는 빠르게 달리기도 했다.
자정쯤 파월이 야영하려 했던 물웅덩이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하게 그곳을 발견했는데, 완전히 버려진 상태였다.
최근에 누군가 머문 흔적도 없었다.
추적하는 기병들의 발자국도 살펴봤다.
이제는 그들이 분명 기병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물웅덩이에서 물만 마시고 잠깐 멈춘 뒤 파월을 계속 쫓아갔다.
늘 파월과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이제 추적자들이 아파치 족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파월을 산 채로 잡아 잔인하게 고문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위험할 정도로 말을 몰았다.
그 빨간 악당들이 파월을 공격하기 전에 따라잡기를 간절히 바랐다.
갑자기 멀리서 총소리가 두 번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파월에게 내가 절실히 필요할 거란 걸 알았다.
좁고 험한 산길을 말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렸다.
1마일쯤 더 달렸지만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길이 갑자기 고개 정상 근처의 작은 평지로 이어졌다.
이 고원지대로 나오기 직전에 좁고 험한 협곡을 지났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과 절망을 느꼈다.
평평한 땅에는 인디언 천막이 하얗게 들어서 있었다.
진영 중앙의 무언가를 둘러싸고 오백 명 정도의 붉은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그것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서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어두운 협곡으로 돌아가 안전하게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다음 날에야 했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영웅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나는 영웅의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백 번이나 자발적으로 죽음과 맞닥뜨렸지만, 그 순간에 다른 선택지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떠올렸을 뿐이다.
내 정신은 복잡한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의무의 길을 택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어쨌든 비겁함이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이번에도 당연히 파월이 그들의 관심거리라고 확신했다.
생각이 먼저였는지 행동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순간 리볼버를 꺼내들고 전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빠르게 총을 쏘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혼자서는 이보다 더 나은 전술이 없었다.
붉은 전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정규군 연대가 들이닥쳤다고 확신했다.
활과 화살, 소총을 찾아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들이 흩어지면서 드러난 광경에 분노와 두려움이 치밀었다.
선명한 애리조나의 달빛 아래 파월이 누워있었다.
용사들의 화살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이미 죽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에서 구하듯이, 파월의 시신이 아파치족에게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고 싶었다.
말을 파월 가까이 몰고 안장에서 몸을 숙여 탄약대를 잡아 말의 어깨 위로 끌어올렸다.
뒤를 돌아보니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보다 고원지대를 가로지르는 게 덜 위험해 보였다.
지친 말에 박차를 가해 멀리 보이는 고개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인디언들은 이제 내가 혼자란 걸 알아챘다.
저주와 화살, 총알을 쏘아대며 쫓아왔다.
달빛 아래서는 저주 말고는 제대로 조준하기 어렵다는 점,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혼란스러워했다는 점, 그리고 내가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이었다는 점 덕분에 적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제대로 추격을 조직하기 전에 주변 봉우리의 그림자 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말은 거의 제 맘대로 달렸다.
고개로 가는 길을 말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은 산맥 정상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계곡으로 내려가 안전을 찾으려 했던 고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실수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이후 10년 동안 놀라운 경험과 모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걸 처음 알아챈 건 쫓아오는 야만인들의 함성이 왼쪽 멀리서 점점 희미해질 때였다.
그제서야 알았다.
그들은 고원지대 가장자리에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 왼쪽으로 갔고, 나와 파월의 시신을 태운 말은 오른쪽으로 간 것이다.
왼쪽 아래 길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평평한 곶에서 말을 멈췄다.
쫓아오던 야만인들이 이웃한 봉우리 끝자락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인디언들은 곧 잘못된 길로 갔다는 걸 알아챌 것이다.
내 발자국을 찾으면 곧바로 올바른 방향으로 수색을 시작할 것이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높은 절벽 면을 따라 꽤 좋은 길이 나타났다.
길은 평평하고 넓었으며,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위쪽으로 이어졌다.
오른쪽으로는 수백 피트 높이의 절벽이 솟아있었고, 왼쪽으로는 바위투성이 협곡 바닥까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이 길을 백 야드쯤 따라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어지면서 큰 동굴 입구가 나왔다.
입구는 높이가 4피트, 너비가 3~4피트 정도였고, 길은 여기서 끝났다.
이제 아침이 되었다.
애리조나의 놀라운 특징인 새벽이 없는 날씨 때문에 거의 아무 예고도 없이 대낮이 되어버렸다.
말에서 내려 파월을 땅에 눕혔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히 살펴봐도 생명의 기미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수통의 물을 죽은 입술 사이로 흘려 넣고, 얼굴을 닦아주고 손을 문질러 주었다.
이미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한 시간 넘게 계속 그를 돌보았다.
파월은 내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진정한 사나이였고, 세련된 남부 신사였으며, 변함없는 진실한 친구였다.
결국 서툰 소생 시도를 포기할 때는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바위 턱에 파월의 시신을 두고 동굴 안을 살피러 들어갔다.
지름이 백 피트, 높이가 서른에서 마흔 피트 정도 되는 큰 공간이 있었다.
바닥은 매끄럽고 잘 닳아 있었으며,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여러 군데 있었다.
동굴 안쪽은 짙은 그림자에 가려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 살펴보는 동안 기분 좋은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긴 시간 힘들게 말을 타고, 전투와 추격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찾아온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있는 곳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꼈다.
한 사람이 군대를 상대로도 동굴로 가는 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너무 졸려서 동굴 바닥에 잠시 눕고 싶은 강한 욕구를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붉은 친구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힘겹게 동굴 입구로 향했지만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다 옆벽에 부딪혔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2장. 죽음으로부터의 탈출
달콤한 꿈결 같은 감각이 밀려왔다.
근육이 이완되고 잠에 빠져들 뻔했을 때 말발굽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근육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 공포에 휩싸였다.
이제 완전히 깨어있었지만 돌로 변한 것처럼 근육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동굴 안에 옅은 증기가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증기는 매우 희미했고 햇빛이 들어오는 동굴 입구에서만 눈에 띄었다.
코끝에 약간 자극적인 냄새가 느껴졌고, 독가스에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누워있었고, 동굴에서 절벽이 꺾이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짧은 오솔길이 보였다.
다가오던 말발굽 소리가 멈췄고, 인디언들이 내가 누운 무덤 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좁은 절벽 길을 따라 살금살금 접근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인디언들이 빨리 끝내주길 바랐다.
그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나에게 가할 수 있는 수많은 고문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살금살금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깃털 장식을 한 전쟁 모자를 쓰고 얼굴에 전쟁 페인트를 한 인디언이 조심스럽게 절벽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야만적인 눈빛이 나와 마주쳤다.
이른 아침 햇살이 동굴 입구로 쏟아져 들어와 나를 비추고 있었기에, 그가 희미한 동굴 속의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사내는 다가오는 대신 그저 서서 응시했다.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턱이 떨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야만인의 얼굴이 나타났고, 셋째, 넷째, 다섯째가 차례로 나타났다.
좁은 절벽 길에서 앞사람을 지나칠 수 없어 어깨 너머로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각각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지만, 그 이유는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앞에 있는 전사들이 뒤에 있는 동료들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전달하는 것을 보니 뒤에도 더 많은 전사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갑자기 내 뒤쪽 동굴 깊은 곳에서 낮지만 분명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인디언들의 귀에 닿자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내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때문에 한 전사가 절벽에서 아래 바위로 곤두박질쳤다.
그들의 거친 비명이 잠시 협곡에 메아리쳤고, 다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들을 놀라게 한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지만, 내 등 뒤 그림자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공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공포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그때의 감정을 과거의 위험한 상황이나 그 이후 겪은 경험과 비교해서만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몇 분 동안 내가 겪은 감각이 공포라면 신이 겁쟁이를 도와주시기를.
비겁함은 확실히 그 자체로 벌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체력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익숙했던 사람에게, 등 뒤에서 들리는 무시무시하고 정체 모를 위험 때문에 마비된 채로 있어야 한다는 건, 마치 양떼가 늑대 무리를 피해 미친 듯이 도망치듯 사나운 아파치 전사들조차 공포에 질려 도망가게 만드는 것은, 가장 끔찍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인가 뒤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은 희미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결국 그 소리마저 멈췄고, 방해 없이 내 상황을 곰곰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마비의 원인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었고, 유일한 희망은 이 마비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갑자기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동굴 앞에서 고삐를 늘어뜨린 채 서 있던 말이 오후 늦게 먹이와 물을 찾아 천천히 오솔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정체불명의 동행자와 함께 남겨졌다.
아침 일찍 절벽 위에 놓아둔 친구의 시신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자정쯤까지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아침에 들었던 끔찍한 신음소리가 놀란 귀를 때렸다.
다시 한번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와 마른 잎이 바스락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신경에 가해진 충격은 극도로 끔찍했다.
초인적인 노력으로 무시무시한 속박을 벗어나려 했다.
그것은 정신과 의지, 신경의 노력이었다.
근육의 힘이 아니었다.
새끼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힘이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풀렸다.
순간적으로 메스꺼움이 느껴졌고 쇠줄이 끊어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굴 벽에 등을 기댄 채 정체불명의 적과 마주 서게 됐다.
달빛이 동굴을 가득 채웠다.
내 앞에는 지난 몇 시간 동안 누워있던 내 몸이 있었다.
눈은 절벽 바깥을 향해 있었고 손은 축 늘어져 바닥에 놓여있었다.
동굴 바닥의 생명 없는 육신을 보고 나서 완전히 혼란스러운 채로 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누워있는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었지만, 여기 서 있는 나는 갓 태어났을 때처럼 벌거벗은 상태였다.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했기에 잠시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첫 번째 생각은 '이것이 죽음인가! 정말로 영원히 저 세상으로 넘어간 것인가!'였다.
하지만 이를 믿기 어려웠다.
마취 상태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력 때문에 심장이 갈비뼈에 부딪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숨은 빠르고 짧게 가빴고, 온몸의 모든 구멍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꼬집어보니 유령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동굴 깊은 곳에서 다시 들려오는 기이한 신음소리에 주변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벌거벗고 무기도 없는 상태로 나를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것과 맞서고 싶지 않았다.
리볼버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만질 수 없는 내 시신에 매여 있었다.
카빈총은 안장에 묶인 총집에 있었고, 말이 떠나버려서 방어 수단이 없었다.
유일한 선택은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동굴의 어둠 속에서 왜곡된 상상력으로 인해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처럼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자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재빨리 동굴 입구를 통해 아리조나의 맑은 밤하늘 아래로 뛰쳐나왔다.
동굴 밖의 상쾌하고 신선한 산공기가 즉각적인 보약이 되어 새로운 생명력과 용기가 솟아났다.
절벽 가장자리에 멈춰 서서 이제는 완전히 근거 없어 보이는 두려움을 자책했다.
동굴 안에서 수 시간 동안 무기력하게 누워있었지만 아무것도 나를 해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냉철하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니, 들었던 소리들은 순전히 자연스럽고 해롭지 않은 원인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동굴의 구조 때문에 약한 바람이 그런 소리를 냈을 것이다.
조사해보기로 했지만, 먼저 머리를 들어 산의 맑고 상쾌한 밤공기로 폐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아래로 아름다운 바위 협곡과 선인장이 점점이 박힌 평평한 대지가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달빛은 그곳을 부드러운 광채와 경이로운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서부의 경이로움 중 아리조나의 달빛 풍경만큼 영감을 주는 것도 드물다.
멀리 은빛으로 빛나는 산들, 산등성이와 건천 위의 이상한 명암, 뻣뻣하지만 아름다운 선인장의 기이한 모습이 한순간에 매혹적이고 영감을 주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마치 죽어 잊혀진 세상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지구의 다른 어떤 곳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선을 풍경에서 하늘로 옮겼다.
수많은 별들이 지상의 경이로움을 위한 화려하고 어울리는 천장을 이루고 있었다.
먼 지평선 근처의 큰 붉은 별이 곧바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을 바라보자 압도적인 매혹의 주문에 걸렸다.
그것은 전쟁의 신 화성이었고, 전사인 나에게는 언제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먼 옛날 밤에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공허를 가로질러 나를 부르고, 유혹하고, 자석이 쇠 조각을 끌어당기듯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 갈망은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다.
눈을 감고 내 소명의 신을 향해 팔을 뻗었다.
순간 생각처럼 빠르게 끝없는 우주 공간을 통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극도의 추위와 완전한 어둠이 스쳐 지나갔다.
3장. 화성에 도착하다
이상하고 기묘한 풍경 속에서 눈을 떴다.
이곳이 화성이란 걸 알았다.
정신이 온전한지, 깨어있는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꿈을 꾸는 게 아니었고, 살갗을 꼬집어볼 필요도 없었다.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듯이, 내면의 의식이 이곳이 화성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나는 노란빛을 띤 이끼 같은 식물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이 식물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깊고 둥근 분지에 누워있는 것 같았고, 분지 가장자리를 따라 낮은 언덕들이 울퉁불퉁하게 이어져 있었다.
정오였다.
태양이 내 몸을 비추었고 맨살에 닿는 열기가 꽤 뜨거웠다.
하지만 아리조나 사막과 비슷한 환경이었다.
여기저기 석영이 박힌 바위가 햇빛에 반짝였다.
왼쪽으로 백 야드쯤 떨어진 곳에는 높이 4피트 정도의 낮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물도 없었고 이끼 말고는 다른 식물도 보이지 않았다.
목이 좀 말랐기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벌떡 일어서자 첫 번째 화성의 놀라움을 경험했다.
지구에서라면 그저 서기만 했을 동작이 화성에서는 3야드 높이까지 튀어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땅에 부드럽게 착지했고 충격이나 진동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때부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걷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지구에서는 쉽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근육의 힘이 화성에서는 이상한 장난을 쳤다.
제대로 걸으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2피트 정도 공중으로 튀어올랐고, 두세 번 뛰고 나면 얼굴이나 등으로 넘어졌다.
지구의 중력에 완벽하게 적응된 근육들이 화성의 낮은 중력과 기압에 처음 적응하려 하니 말썽을 부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유일한 거주지인 그 낮은 건물을 꼭 조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움직임의 기본으로 돌아가 기어가기로 했다.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었고, 금방 그 건물을 둘러싼 낮은 담장에 도착했다.
내가 있는 쪽에는 문이나 창문이 보이지 않았다.
담장 높이가 4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담장 너머를 들여다봤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건물의 지붕은 4~5인치 두께의 단단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수백 개의 커다란 알들이 있었다.
알은 완벽한 구형이었고 눈처럼 하얬다.
크기는 거의 비슷했는데, 지름이 약 2.5피트 정도였다.
5~6개의 알은 이미 부화했고, 햇빛 속에서 눈을 깜빡이는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들을 보니 정신이 온전한지 의심스러웠다.
머리가 몸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몸은 왜소했으며, 목이 길었다.
다리는 6개였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2개의 다리와 2개의 팔, 그리고 팔이나 다리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중간 사지였다.
눈은 머리 중앙보다 약간 위쪽, 양 옆에 튀어나와 있었다.
눈을 앞뒤로 움직일 수 있었고 각각 독립적으로도 움직일 수 있어서, 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어느 방향이든 볼 수 있었고 두 방향을 동시에 볼 수도 있었다.
귀는 눈보다 약간 위에 있었고 서로 더 가까이 붙어있었다.
작은 컵 모양의 더듬이 같았고, 이 어린 개체들의 경우 1인치도 채 튀어나오지 않았다.
코는 얼굴 중앙에 있는 세로로 된 틈이었고, 입과 귀의 중간에 위치했다.
몸에는 털이 없었고 아주 연한 황록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성체가 되면 이 색깔이 올리브 그린으로 짙어지는데, 수컷이 암컷보다 더 어두웠다.
또한 성체의 머리는 새끼들처럼 몸에 비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눈의 홍채는 알비노처럼 붉은색이었고, 동공은 검었다.
눈알은 이빨처럼 하얬다.
아래쪽 엄니는 위로 휘어져 날카로운 끝을 이루는데, 그 끝이 지구인의 눈이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이빨의 흰색은 상아색이 아니라 가장 하얗고 빛나는 도자기 같은 색이었다.
올리브색 피부를 배경으로 엄니가 두드러져 보여서 무기로서 더욱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런 세부사항은 나중에 알게 된 것들이다.
새로운 발견의 놀라움을 곱씹을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알들이 부화하는 걸 보면서 끔찍한 괴물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뒤에서 다가오는 스무 마리의 성체 화성인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화성의 극지방 얼음 지대와 드문드문 있는 경작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표면을 덮고 있는 부드럽고 소리 없는 이끼 위로 다가왔기에, 그들은 쉽게 나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훨씬 더 사악했다.
난 맨 앞에 있던 전사의 장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그들의 존재를 알아챘다.
이렇게 작은 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쉽게 빠져나왔다.
선두에 선 전사의 소총이 안장 옆에서 흔들리다가 큰 금속 창 끝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작은 소리 덕분에 돌아볼 수 있었고, 내 가슴에서 3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거대한 창이 겨누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창은 길이가 12미터나 되었고 반짝이는 금속 끝이 달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작은 악마들의 커다란 복제품 같은 존재가 말을 타고 창을 낮게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증오와 복수, 죽음의 화신 앞에서 아까 본 것들은 얼마나 작고 무해해 보였는지 모른다.
이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키가 4.5미터는 되었고 지구에서라면 180킬로그램은 나갔을 것이다.
우리가 말을 타듯이 그는 동물의 몸통을 아래쪽 다리로 감싸고 앉아있었다.
오른쪽 두 팔로는 거대한 창을 탈것 옆에서 낮게 잡고 있었고, 왼쪽 두 팔은 균형을 잡기 위해 옆으로 뻗고 있었다.
그가 탄 것은 고삐나 고삐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 탈것을 지구의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깨 높이가 3미터였고, 양쪽에 각각 네 개의 다리가 있었다.
꼬리는 넓고 평평했으며 뿌리보다 끝이 더 컸고 달릴 때는 뒤로 쭉 뻗었다.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고 코끝에서 길고 두꺼운 목까지 머리가 갈라져 있었다.
주인처럼 털은 전혀 없었지만, 짙은 슬레이트색에 매우 매끄럽고 윤이 났다.
배는 하얬고, 다리는 어깨와 엉덩이의 슬레이트색에서 발쪽으로 갈수록 선명한 노란색으로 변했다.
발은 두꺼웠고 발톱이 없었는데, 이것도 그들이 소리 없이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많은 다리를 가진 것은 화성 동물의 특징이었다.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과 화성에 존재하는 유일한 포유류 한 종류만이 제대로 된 발톱을 가지고 있었고, 발굽이 있는 동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 악마 같은 존재의 뒤로 열아홉 마리가 더 따라왔다.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각자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마치 우리 인간이 비슷한 틀에서 만들어졌지만 서로 다른 것처럼.
내가 자세히 설명한 이 광경, 아니 현실이 된 악몽은 돌아보는 순간 끔찍하고도 빠른 인상을 남겼다.
무기도 없고 옷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의 첫 번째 법칙이 당면한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나타났다.
돌진해 오는 창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성의 부화장이라고 판단한 그곳의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지구적이면서도 초인적인 도약을 했다.
내 시도는 화성 전사들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다.
9미터나 높이 뛰어올랐고, 쫓아오는 자들에게서 30미터나 떨어진 울타리 반대편에 착지했다.
부드러운 이끼 위에 무사히 쉽게 착지했고, 돌아보니 적들이 맞은편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몇몇은 나중에 극도의 놀람이라고 알게 된 표정으로 나를 살펴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내가 그들의 새끼들을 해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나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내가 어린 화성인들을 해치지 않았고 무기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덜 사나운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내가 그들의 호감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보여준 도약이었다.
화성인들은 거대하지만, 뼈는 매우 크고 근육은 그들이 극복해야 하는 중력에 비례해서만 발달했다.
그 결과 체중에 비해 지구인보다 훨씬 덜 민첩하고 힘도 약했다.
만약 그들 중 하나가 갑자기 지구로 이동된다면 자신의 몸무게조차 들어올리지 못할 것이다.
사실 나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내가 보여준 능력은 지구에서만큼이나 화성에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던 생각에서 갑자기 동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잡아야 할 놀라운 발견물로 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민첩성으로 얻은 이 잠깐의 여유 덕분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전사들의 모습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하루 전에 나를 쫓던 다른 전사들과 이들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거대한 창 외에도 각자 여러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도망가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명백히 소총으로 보이는 무기였다.
왠지 그들이 이 무기를 다루는 데 특별히 능숙할 것 같았다.
이 소총들은 하얀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목재로 된 개머리판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이 목재는 매우 가볍고 단단한 나무로, 화성에서 매우 귀하게 여겨졌고 지구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총신의 금속은 주로 알루미늄과 강철로 이루어진 합금이었는데, 우리가 아는 강철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이 소총들은 상대적으로 가벼웠고, 작은 구경의 폭발성 라듐 탄환을 사용했으며, 긴 총신 덕분에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리에서도 치명적이었다.
이론상 유효 사거리는 480킬로미터였지만, 무선 조준기를 장착하고 실전에서 사용할 때는 320킬로미터 정도가 최대였다.
화성의 총기에 대해 큰 경외심이 생겼고, 어떤 텔레파시 같은 힘이 이 죽음의 기계 스무 정의 총구 아래서 한낮에 도망치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 같았다.
화성인들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고, 한 명만 울타리 근처에 남겨두었다.
약 180미터 정도 이동한 뒤 멈춰 서서 탈것을 어린 화성인 우리 쪽으로 돌려 울타리 근처의 전사를 지켜보았다.
그는 창으로 나를 거의 꿰뚫을 뻔했던 자였고, 분명 무리의 지도자였다.
다른 이들이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현재 위치로 이동했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무리가 멈추자 지도자는 탈것에서 내려 창과 작은 무기들을 내려놓고 부화장 끝을 돌아 내게로 왔다.
머리와 팔다리, 가슴에 묶인 장신구를 제외하면 나처럼 완전히 무기도 없고 벌거벗은 상태였다.
지도자가 15미터쯤 다가왔을 때 거대한 금속 팔찌를 풀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맑고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멈춰 섰고, 더듬이 같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상한 눈을 나에게 더욱 집중했다.
침묵이 불편해지자 내가 먼저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가 평화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무기를 내려놓고 부하들을 물러나게 한 뒤 혼자 다가오는 것은 지구 어디서나 평화의 의미였다.
그렇다면 화성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화성인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비록 말은 이해할 수 없지만 행동이 지금 내 마음에 가장 소중한 평화와 우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내 말은 그에게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내 말 뒤에 바로 이어진 행동은 이해한 것 같았다.
그에게 손을 뻗어 다가가서 지도자의 손바닥에서 팔찌를 가져와 팔꿈치 위에 채우고,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
지도자의 넓은 입이 답하듯 미소를 지었고, 중간 팔 하나를 내 팔에 걸고 함께 돌아서서 자신의 탈것을 향해 걸었다.
동시에 지도자는 부하들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부하들이 거칠게 달려오기 시작했지만 그의 신호로 멈췄다.
분명 내가 다시 놀라면 저 멀리 뛰어가 버릴까 봐 걱정한 것 같았다.
그는 부하들과 몇 마디를 나누고 나에게 그들 중 한 명의 뒤에 타라고 손짓한 뒤, 자신의 탈것에 올랐다.
지목된 부하가 두세 개의 손을 내밀어 나를 들어 올려 자신의 탈것의 반짝이는 등 위에 태웠다.
나는 화성인의 무기와 장신구를 고정하는 벨트와 끈을 잡고 최선을 다해 매달렸다.
그리고 모든 기병대가 돌아서서 멀리 보이는 산맥을 향해 질주했다.